리눅스 30주년 맞이 리누스 토발즈 인터뷰 번역 - 파트 2

리눅스 커널이 처음 공개된지 올해로 30년이 되었고, 이를 맞아 한 tag1 에서 리누스 토발즈와 인터뷰 를 했습니다. 분량이 많아 두 파트로 나눠 올렸는데요, 해당 매체에 허락을 받고 이곳에 그 중 두번째 파트의 번역을 올립니다.

아래 분들께서 오타 등을 찾고 글을 다듬는 걸 도와주셨습니다.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Tag1 의 원본 글은 다음 링크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https://www.tag1consulting.com/blog/interview-linus-torvalds-open-source-and-beyond-part-2

첫번째 파트의 번역은 여기서 보실 수 있습니다.


오픈소스 프로젝트의 관리

JA: 우린 최근에 Drupal 을 만든 Dries Buytaert 와 이야기 해봤는데, 그는 당신에게 받은 많은 영감과 가끔의 멘토링, 그리고 그가 지난 20년동안 그 유명한 Drupal CMS 를 관리하는 동안 받은 조언을 이야기하며 당신을 칭찬했습니다. 당신은 다른 오픈소스 프로젝트 메인테이너들과 자주 소통하며 멘토쉽을 제공하거나 기록들을 공유하나요? 얼마나 자주 다른 오픈소스 메인테이너들이 당신의 조언을 위해 연락해 옵니까?

LT: 전 다른 사람들은 잘 모르지만, 안그럽니다, 전 개인적으로 다른 오픈소스 프로젝트와 그다지 교류하지는 않는데, 그건 그저 제가 상당히 “한가지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게 제가 30년이 지나서도 여전히 커널을 관리하고 있는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한 프로젝트에서 다른 프로젝트로 자주 이동하지만, (저같은) 또다른 사람들은 더 오랜 시간동안 한가지 일에 상당히 집중해 있곤 합니다.

하지만, 둘 이상의 오픈소스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개발자들 사이에 겹치는 부분이 제법 있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리고 다른 프로젝트들이 공통된 인프라를 통해 서로에게 분명 영향을 끼칩니다. 그러니까, 그런 종류의 다른 프로젝트간 모임은 분명 있고, 컨퍼런스라던지에서 (다시 대면 컨퍼런스가 이뤄지게 되면) 그런 사람들을 만나게 되곤 합니다.

JA: 한 오픈소스 프로젝트의 메인테이너로써, 다른 사람들이 프로젝트를 더 성공적으로 관리하는데 도움이 될만한 핵심 교훈을 배운게 있나요?

LT: 이건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인데요, 왜냐하면 전 성공을 위한 열쇠가 무엇인지 정말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요, 리눅스는 무척 성공적인 것이 되었고, Git 역시 성공했죠, 하지만 그걸 무언가 더 깊은 이유로 연관시키는 건 항상 무척 어렵습니다. 어쩌면 저는 그저 운이 좋았을지도요?

행운과 타이밍, 그리고 “옳은 시간에 옳은 장소에” 있는 것은 정말로 중요하니까요. 전 리눅스와 Git 두 경우 모두, 제가 시작한 프로젝트들이 많은 사람들에게, 설령 그 사람들은 자신들에게 그것들이 필요하다는 걸 몰랐다고 해도, 필요한 것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그저 행운이었을까요? 아마도요. 또는, 그 프로젝트들이 필요했던 그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 저만이 유일하게 그 일을 실제로 행하고 그걸 되게 만든 것이었을까요?

저의 자존심은 후자를 선호합니다만, 정직성은 행운 역시 정말 필요하며 옳은 프로젝트, 사람들이 정말로 필요로 하는 프로젝트를 고르는게 정말 필요하다고 말하도록 하는군요.

하지만 그런 종류의 “큰 질문들” 을 무시하고 생각해 보면, 오픈소스 메인테이너라면 중요하다고 제가 생각하는, 몇가지 실용적이고 현실적인 것들이 있습니다.

그런 중요한 것 중 하나는 당신이 거기에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당신은 거기에 있어야 하고, 다른 개발자들을 위해 거기 있어야 하며, 항상 거기 있어야 합니다. 당신은 기술적 문제를 맞닥뜨릴 테고, 그건 무척 좌절감을 줄 겁니다. 당신은 그 기술적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할지에 대한 다른 아이디어를 가졌을 수 있는 사람들과 일하게 될겁니다. 그리고 기술적 문제들은 어떤 측면에서 보자면 쉬운 부분인데, 보통은 기술적 해결법이 존재하고, 당신은 종종 객관적으로 “이게 더 낫다/빠르다/간단하다/” 또는 뭐라고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보다 어려운 부분은 당신이 좋아하지 않는, 또는 당신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과도 결국은 소통해야 할 수 있다는 것이고 성격적 부딪힘도 있을겁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내게 숫자를 보여줘” 전략으로 후퇴할 수 없습니다 - 사람들은 항상 혼자 있지 않게 마련이며, 그건 숫자 놀이가 아닙니다. 여러분은 궂은 날들을 겪게 될 것이며, 당신이 함께 일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그걸 모두 뚫고 나아가야 합니다.

당신은 휴식을 취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게 아닙니다. 전 항상 그러고 있습니다. 지치면, 전 그냥 컴퓨터 앞을 떠나서 책이나 뭔가를 읽을 겁니다. 당신이 지치거나 화났을 때 무언가 생산적인 일 (또는 토론) 을 억지로 하려 하는건 좋지 않습니다. 그리고 전 분명 이걸 항상 잘하지는 못했고, 사람들을 모욕하고 너무 거친 말을 사용했습니다. 이제는 좀 나아졌다고 생각합니다만, 제가 그걸 더 잘하는 한가지 방법은 말 그대로 더 자주 물러나는 겁니다 - 적극적으로 “난 지금 나쁜 기분에 빠져 있습니다” 라고 알리고 컴퓨터에서 물러나기를 시도하는 거죠.

그러니 끊임없다는 의미로 “항상” 거기 있어야 하는 건 아닙니다. 하루 쉬는 건 괜찮습니다. 일주일을 쉬어야 하는 건 사람들에게 알려야 하는 일일 수 있습니다. 한달을 쉬는건? 그 때에는 관리 계획을 세워야만 하고, 리눅스의 30년간 그게 실제로 두번 일어났습니다: 한번은 kernel.org 가 망가져서 사람들이 모든게 고쳐졌다는 걸 분명히 하기 위해 많은 시간을 쏟았던 때이고, 두번째는 제가 제 행동을 통제 하에 두어 보려 휴식을 취했을 때입니다.

제가 말하고자 하는건 큰 프로젝트를 관리하는 건 상당한 양의 일이고, 여러분이 오랫동안 지속해야 하는 무언가라는 점입니다. 그게 모두 즐겁기만 하지는 않습니다. 그건 흥미로운 일입니다. 도전적이라는게 최선의 설명 같군요. 전 커널 메인테이너로써의 일에 따분해지진 않았습니다. 하지만 항상 장밋빛인 것도 아닙니다. 모두가 그런 종류의 일을 하고 싶어하지는 않습니다.

또다른 중요한 건 당신이 개방적이어야 한다는 겁니다. 그리고 전 이걸 여러 방향으로 의미합니다. 일을 사적으로 토론하는 내부 비밀집단을 만들고 최종 결과만을 (또는 핵심이 아닌 작업물만을) 공개하는 형태의, 일종의 “파벌” 을 만드는 건 정말 쉽습니다, 모든 중요한 것들은 회사 내부나 핵심 그룹 내에서 일어나며 외부 사람들은 그 파벌 내부로 들어가기가 힘들며, 그건 무척 사적이고 배타적인 관계로 그 핵심 그룹 내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아보는 것만 해도 힘들기 때문입니다.

이게 제가 공개된 메일링 리스트를 좋아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입니다. “초대 기반” 리스트가 아니라요. 참여하기 위해 서명을 할 필요조차 없죠. 정말 열려 있습니다. 그리고 거의 모든 개발 관련 토론이 거기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하지만 “개방성” 은 또다른 방향으로도 중요합니다 - 다른 사람의 해결책에 개방적이 되고, 무엇이 어떻게 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매우 분명하고 유동성 없는 아이디어를 갖지 않는 것. 리눅스가 성공한 이유 가운데 하나는 제가 실제로 거대한 계획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는 점, 그리고 그게 어떻게 되어야 할지에 대한 높은 기대감을 갖지 않았으며, 때문에 사람들이 패치나 기능들을 위한 요청을 보내기 시작했을 때, 제게 그것들은 모두 소중했고 리눅스가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한 선입견이 없었다는 사실이라고 생각합니다. 결과적으로: 리눅스 커널 개발에 참여하고자 했던 그 개개인 (그리고 나중에는 큰 회사들) 모두는 그러기가 쉬웠는데, 전 제가 처음에 정말 흥미 없던 것들을 리눅스가 하게 되는 것에 상당히 개방적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전 “개방성” 이 정직성 측면에서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 뒤에서 정치질 하는 걸 원치 마세요. 여러분의 동기를 공개하고, 여러분이 왜 그걸 하고 무얼 하고 싶은지 공개하세요. 함께 일하는 모두를 좋아해야 할 필요는 없고, 그들도 당신을 좋아할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자신들이 무얼 하고자 하며 무얼 하고 있는지에 대해 공개적이 된다면, 여러분이 항상 최고의 친구가 되어야만 하는건 아닙니다 - 가장 중요한 건 여러분이 그들을 믿을 수 있다는 겁니다.

믿음은 중요하니까요. 많이.

JA: 덜 코딩하는 것, 소통과 리딩을 더 하는 것에 대해서 이미 말씀하신 것에서 더 나아가서, 당신이 배워야 했는데 그게 어려웠던 특별한 기술이 있었나요? 예를 들어, 권한 위임하기, 더 나은 글쓰기, 그리고 다른 코딩 외의 기술들 - 그리고 그렇다면, 그걸 어떻게 배웠나요? 실습을 했나요, 책에서 배웠나요, 또는 다른 사람으로부터? 또는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인가요?

LT: 저를 위한 거의 모든 프로세스는 상당히 점진적이었고 학습하는 경험이었다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대답을 시작하겠습니다. 30년은 긴 시간이고, 무척 적은 변경들만이 매우 갑작스러운 것이었으며, 우리가 일을 하는 방식은 매우 “유기적인” 방식으로 성장했습니다.

달리 말하자면, 미리 계획하고 관리 교과서 등을 읽는 것의 결과가 아니라는 겁니다. 대부분의 경우 그건 그 스스로 벌어졌고, 우리가 지금 가지고 있는 모든 구조는 어떤 조직도로부터 만들어진 게 아니라, 그저 사람들이 “각자의 자리를 찾은” 결과입니다.

사람들이 어렵다고 생각하는 한가지 분명한 기술은 “제어를 놓는 것” 입니다. 저는 초창기에, 사람들이 제게 패치를 보내면 그걸 패치 그대로 적용하지 않고 그걸 읽고 사람들이 무얼 하고 싶은지 알아낸 후, 그걸 저 스스로 했던 걸 기억합니다. 제가 프로젝트를 그렇게 시작했고, 그걸 제가 더 편하게 느꼈으며, 그걸 통해 코드를 더 잘 알 수 있었으니까요.

결국엔 그게 제게 있어 큰 문제가 아닌 걸로 드러났습니다. 전 꽤 빨리 그러는 걸 그만뒀는데, 그저 제가 게으르기 때문입니다. 전 패치를 읽고 그 사람이 뭘 한 건지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그 후부터는 그 패치들을 그대로 적용했습니다. 그러니 제가 제어에 집작하던 날들은 꽤 금방 끝났습니다. 제 생각에 저는 믿을 만한 사람을 찾는걸 잘했고, 그 후로는 그냥 그렇게 했습니다 - 그들을 믿고, 지나친 마이크로매니징은 하지 않기.

그러니 권한 넘기기는 제게는 큰 문제가 아니었습니다만, 다른 몇몇 프로젝트들에는 그랬음을 알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이건 부분적으로는, 우리의 메인테이너쉽 모델이 절대적인 믿음을 요구하지 않는, 덕분에 모든 일을 훨씬 쉽게 만들어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대화 기술은 무척 많이 중요합니다. 저는 저널리스트 가족 출신이며 (제 부모님 두분 모두 저널리스트였고, 제 삼촌도 그렇고, 제 증조부는 시인 겸 저널리스트였습니다), 덕분에 매우 어릴 때부터 읽기와 쓰기가 상당히 당연하게 여겨지는 집에서 자랐습니다. 영어는 제 세번째 언어지만 제가 리눅스 개발을 시작했을 때는 이미 익숙했고, 따라서 소통이 큰 문제는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이게 개인적 (어쩌면 성격) 이유로도 언어 장벽 이유로도 큰 문제가 될 수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대부분의 것은 저는 직접 하면서 배웠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기억해 주세요 - 리눅스의 어떤 것도 하룻밤에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30년 전의 그 프로젝트는 오늘날의 모습과 무척 달랐습니다.

JA: 오픈소스가 상당히 성공적인 것이 되었지만, 가장 큰 유저들 가운데 다수, 예를 들어 회사들은, 그들이 의존하고 있는 그 오픈소스 프로젝트에 기여를 하거나 지원을 하는 일을 하지 않거나 아주 조금만 합니다. 사용자 수로만 따지면 놀랍도록 크고 성공적인 프로젝트의 개발자들조차 일주일치 커피를 사기 위한 돈을 버는게 행운인 경우가 있습니다. 이게 해결 가능할까요? 오픈소스 모델은 지속 가능합니까?

LT: 전 이에 대한 답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어떤 이유로든 커널은 이 문제를 겪지 않았습니다. 그래요, 리눅스의 순수한 “사용자” 인 회사들이 있습니다만 그들도 결국은 지원을 받고 싶어하고, 따라서 계약자나 리눅스 배포판에 의존하게 되어서 이는 분명 결과적으로 커널 개발자 일자리의 큰 원천이 됩니다.

그리고 커널을 사용하는 거대 기술 기업 중 다수가 종종 개발 프로세스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됩니다. 어떤 경우에는 그들은 내부 작업을 더 많이 하게 되고 그것들을 업스트림으로 도로 기여하는데 썩 열심이진 않습니다 (그 이름들을 거론하진 않겠습니다, 그리고 그 중 몇몇은 그걸 개선하려 정말 열심히 노력하고 있어요), 하지만 얼마나 많은 대기업이 업스트림 커널 개발에 개방적으로 참여하고 있는지, 그리고 커뮤니티의 중요한 부분인지에 대한 결과적 사실은 실로 고무적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이유로든, 커널 개발 커뮤니티는 모든 상업적 관심들과 통합되는데 상당히 성공적이었습니다. 물론, 그 중 일부는 매우 의도적인 것이었습니다: 리눅스는 거의 항상 상업적 사용자에게 열려 있었고, 전 의도적으로 “자유 소프트웨어 (역자 주: Free Software)” 그룹의 극단적 형태의 일부로부터 분명 찾을 수 있는 그 모든 상업성 반대적 사고방식을 피했고, 저는 - 그리고 리눅스는 - “오픈소스” 로의 브랜드 교체의 큰 부분을 차지했습니다.

왜냐하면 솔직하게 말해서, rms (역자 주: 리처드 스톨먼) 와 FSF 의 거의 종교적인 분위기 중 일부는 그저 어리석은 것이었고 그 커뮤니티의 일부는 적극적으로 상업적 이용을 못하게 하려 했습니다.

그리고 전 그걸 상업적 관심에 의해 더럽혀지는 걸 항상 걱정하는 누군가라고 부릅니다. 예를 들면 저는 한 리눅스 회사를 위해 일하고 싶지 않다고 의식적으로 생각했습니다. 저는 첫 10년간은 리눅스 관리를 직업으로써 하지 않았습니다. 그건 제가 상업적 관심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해서가 아니라, 사람들이 저를 분명한 중립적 관계자라고 여기지, “경쟁자” 라고 느끼지 않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하지만 일부 프로젝트는 지나치게 상업 반대 성향을 가짐으로써, 그리고 회사들이 참여하기 어렵게 함으로써 자기 발등에 총을 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회사와 일하는게 항상 쉽지는 않습니다. 회사에 오픈소스와 일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가르치는 걸 도우려 노력하는데 무척 적극적인 몇몇 커널 메인테이너들이 있습니다: 그건 리눅스 재단이 하는 일 가운데 하나이고 (기술적 분야에서만이 아니구요: 법적 문제 등을 위한 수업도 있습니다), 주요 커널 메인테이너 가운데에서는 Greg KH 가 그 쪽으로 무척 적극적입니다. 그러니 노력이 좀 들어갑니다.

하지만 그게 지속 가능하냐구요? 그렇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오픈소스가 지속가능할 뿐만 아니라 복잡한 기술 문제는 그 문제가 하나의 단일 회사에서 관리하기에는, 심지어 거대하고 능력 있는 기술 회사라 할지라도, 지나치게 복잡하게 되기 때문에 결국은 오픈소스가 여러분에게 정말 필요하게 됨을 100% 믿고 만족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양쪽 모두에 상당한 개방성을 필요로 합니다. 모든 회사가 좋은 파트너가 되지는 않을 겁니다, 그리고 일부 개발자는 대기업과 일하고 싶어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JA: 장기간 일한 오픈소스 메인테이너들과 대화하며 우리가 발견한 공통적 주제는 번아웃으로, 부분적으로는 프로젝트를 매우 공개적으로 유지하는데 대한 변함없는 압력, 그리고 자기가 무언가를 빚쟁이라도 되는듯 요청을 해대는 사용자들 때문입니다. 당신도 이걸 경험하셨나요? 어떻게 이걸 처리하고, 어떻게 번아웃을 피하시나요? 커널 개발을 그만두는 걸 고려해 본 적이 있습니까?

LT: 글쎄요, 앞의 “핵심 교훈들” 질문에서 이 문제를 넌지시 이야기 한 것 같은데요.

왜냐하면, 그래요, 그런 압박이 있습니다. 그리고, 예, 저 또한 진저리를 친 적이 있습니다.

동시에, 저 개인적으로는, 저의 “됐어, 이걸로 충분해” 발작은 “오늘은 이걸로 충분해” 를 의미하는데 훨씬 가깝습니다. 저도 스트레스를 받고, 짜증이 날 때가 있습니다. 전 분명 사람들 앞에서 몇번 폭발했고, 그때는 흉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런 일이 재발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해오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제가 무언가나 누군가를 모욕하는 걸 그만두는 건 분명 보지 못할 겁니다.

하지만.

전 자리에서 일어나고, 책을 읽고, 바깥 날씨가 좋으면 드라이브를 잠깐 하기도 하고, 휴식을 취합니다. 그러면 전 거기서 극복됩니다. 그리고 다음날 복귀하는데, 결국 저는 제가 하고 있는 걸 정말 즐기기 때문입니다. 커널 개발을 하지 않으면 매일을 눈물로 지새울 겁니다.

그러므로 휴가를 갈 때에도 (전 일년에 두번 스쿠버 다이빙을 합니다, 판데믹 덕에 작년엔 그러지 못했지만요) 저는 제가 개발을 계속할 수 있도록 랩탑을 챙깁니다. 제가 평소만큼 즉각적으로 응답하지 않을 것을 사람들에게 알리지만 개발 기간 내에 일을 끝마칠 수 있는 한은 그건 일반적으로 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정전된 환경에 놓이는 경우는 제게 매우 드뭅니다, 그게 몇번 일어난 적 있긴 하지만 말이죠 (다시 말하지만 - 가끔 스쿠버 다이빙을 하는 건 오늘날에도 “인터넷 없는 진귀한 곳” 을 의미합니다), 때문에 저는 몇번 그로 인해 일주일 가량 연락이 끊긴 적 있습니다.

그리고 전 해외에 머무는 것, 일주일간 하루에 다섯번씩 다이빙 하는 것, 그리고 말 그대로 이메일을 읽을 수조차 없는 걸 정말 좋아합니다. 지난 5년간 이걸 세번 했습니다, 아마도요. 멋진 시간이었어요.

하지만 그러고 나선 복귀합니다, 그리고 복귀하는 것도 정말 행복합니다.

JA: 30년은 긴 시간입니다, 그리고 미래를 예측하는 건 불가능하단 걸 저도 알지만 이 질문을 하고 싶군요: 다음 30년동안 리눅스는 어떻게 될까요? 그리고 그 동안 당신의 역할은 무엇이 될거라 생각하나요?

LT: 이건 제가 답변할 수 없는 질문인데, 제가 이걸 회피하려 해서가 아니라 그건 제가 일하는 방법, 제가 프로젝트를 생각하는 방법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전 “30년 계획” 이 없습니다. 5년짜리 계획조차 없어요. 사실, 저는 한두개 릴리즈 (겨우 수개월) 이상은 계획하지 않아요.

엔지니어로써, 저는 “세부사항이 중요하다” 는 강한 의견을 갖고 있습니다. 세부사항이 중요한 거의 유일한 것입니다. 세부사항을 옳게 했다면, 나머지는 따라올 겁니다.

이게 좀 이상하게 들릴 수 있을 겁니다, 제가 이미 “좋은 취향” 에 대해 이야기 한 사실을, 그리고 제가 유닉스 철학 (“모든 것은 파일이다” 가 핵심 원칙 중 하나죠) 이 옳다고 이야기하는 게 기록되어 있음을 생각해 보면 말이죠.

그리고 Git 의 경우, 저는 전반적인 “설계” 역시 원했고, Git 에는 모든 것에 앞서는 큰 컨셉 몇가지 (“모든 것은 변형 불가한 객체다” 가 Unix 의 것과 같은 Git 의 것일 겁니다) 가 존재합니다.

하지만 그런 “높은 수준의 설계” 같은 건 주로 결속력 있는 결과 같은 걸 위해, 그리고 커뮤니티에 일종의 “설계 방향 지침” 을 위해 필요합니다. 그게 결과적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현실은 복잡하고 때로는 추합니다, 그리고 그런 높은 수준의 큰 설계는 세부 사항, 그리고 현실에서는 실제로 필요하게 될 모든 특수한 경우들을 담지 못합니다.

그래서 저는 제가 “꾸준히 일하는 엔지니어” 라고 이야기 하길 좋아합니다. 전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보고, 우리가 지금 가진 문제를 보고, “내가 그 결과를 관리해야만 한다” 를 아는 것 외의 어떤 미래도 계획하지 않으며, 우리가 오늘 하는 일이 내일 큰 문제가 되지 않음을 분명히 하기를 원합니다.

이게 당신의 질문의 마지막 부분에 일종의 답이 될 겁니다: 전 제가 계속 거기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다음 30년동안 계속은 아니겠지만, 전 제가 하는 일을 즐기고, 제가 프로젝트에 실제 도움이 된다고 느끼는 동안은 계속 거기 있을 겁니다.

JA: 자신의 오픈소스 개발 작업을 지원할 돈이 늘어나기를 원하는 개발자를 위한 조언이 있습니까?

LT: 이건 제가 정말로 아무런 답도 갖고 있지 않은 첫번째 질문이군요.

전 리눅스를 긴 시간동안 지속될 순수한 취미라고, 그게 진짜 제 직업이 될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고 시작했습니다. 제 첫번째 (처음 몇년은 일했던 학계가 아닌) 업계에서의 직업은 리눅스와 연관되지 않은 것이었고, 전 제 계약서가 제 리눅스 관련 작업은 회사의 일이 아님을 명시하게 했습니다 (Transmeta 가 - 역자 주: Transmeta 는 리누스 토발즈가 처음 일했던 회사입니다 - 리눅스를 사용하긴 했지만 그건 제 진짜 일이 아니었습니다, Transmeta 가 내부적으로 가지고 있는 리눅스 문제 - 주로 초기의 SMP 문제 - 를 제가 해결하게 된다고 해도 말이죠).

사실, 리눅스 2.6 릴리즈를 위해 (좋아요, 분명한 버전이 뭐였는지 지금은 솔직히 확신이 들지 않는군요, 그건 오래전 일이예요. 그건 2.5.x 로 스트레스 받던 시절의, 그리고 제가 2.6 릴리즈를 위해 전업으로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던 때라고 생각합니다) Transmeta 에 무급 휴가를 신청할 계획을 세웠을 정도로 제게 있어 리눅스는 일이 아닌 것에 가까웠습니다. 그때 OSDL (“Open Source Development Labs” - 나중에 리눅스 재단이 되었죠) 이 나타나서 제가 상업적 리눅스 회사를 위해 일하지 않고도 실질적으로 리눅스 작업을 위해 돈을 받을 수 있게 되었죠.

그러니 리눅스 개발의 첫 10년간은 돈을 더 버는 것 같은 것은 제게 있어 문제로 여겨지지 않았습니다 - 전 그걸 다른 측면에서 했습니다. 그리고 그 10년간 그렇게 일한 후, 제가 그걸 전업으로 해야 할 것 같다고 느꼈을 때에는, “그냥 그렇게 되었을” 정도로 리눅스가 이미 중요해 졌습니다.

하지만 전 이게 정말 정말 평범하지 않은 경우임을 알고 있고, 당신의 질문에 대한 일반적 경우를 위한 답은 정말 갖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그 답이 정확히 “10년간은 그걸 취미로 계획하고, 그게 더이상 취미일 수 없을 정도로 성장하면, 당신은 이미 후원 문제를 해결했을 겁니다” 가 아니라면 말이죠.

주의 바랍니다! 여기가 핀란드에서 자랐다는 사실이 제게 있어 얼마나 행운이었는지 이야기 하고 싶은 지점입니다. 세계 최고 수준에 완전히 무료인 교육 시스템 하에서, 저는 리눅스를 취미로 여기는게, 그리고 제가 상업적 소프트웨어 개발자로써 돈을 벌 수 있음을 아는게 완전히 말이 되는 배경 하에서 자랐습니다. 저는 대략 7000 달러의 - 첨단 기술의 세계에서는 걱정할 가치가 있지는 않은 - 학비 지원 같은 걸 받고 8년간 세계에서 손꼽히는 수준의 대학교에서 공부를 했습니다.

미국의 많은 사람들이 그게 삶에 주는 자유에 대해 정말로 이해하지 못함을 저는 실로 깨달았습니다. 정말 여러분이 좋아하는 일을 고를 수 있게 됩니다, 왜냐면 여러분이 그 비용을 지불할 수 있으니까요.

The Linux Foundation

JA: 리눅스 재단의 생성에 당신은 얼마나 관여했나요? 당신의 역할은 무엇입니까? 당신이 상업적 리눅스 회사를 위해 일하지 않고도 급여를 받을 수 있게 하는 것 외에 그 재단이 커널에 영향을 끼쳤나요?

LT: 전 OSDL (나중에 리눅스 재단이 되었죠) 의 생성에 아무런 일도 하지 않았습니다. 전 말 그대로 그저 직원입니다, “펠로우” 라는 남의 시선을 끄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요.

OSDL 은 회사들이 일을 함께 하는 걸 위한, - 특히 엔터프라이즈적 가능성에의 협력을 위한 - 그리고 개발자들이 사용 가능한 기계들을 (예를 들어 개발자들이 접근 권한을 갖지 않고는 사용할 수 없는 종류의 하드웨어) 갖추는 걸 중시하는 비영리 업계 협회로 시작되었습니다. 이 모든게 제가 그들에게 고용되기 전에 시작되었고 그 모든게 저와 연관 없이 일어났습니다.

그러고 나서 OSDL 이 또다른 비영리 업계 협회인 Free Standard Group 과 병합되면서 리눅스 재단이 되었습니다. 하드웨어 지원쪽 일은 곁가지가 되었고, “업계 협회” 부분이 주요한 일이 되었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그러고 나서 제가 그들에게 고용되었긴 하지만, 이건 제가 개인적으로 속한 무언가가 아니었습니다: 저는 의도적으로 기술적 커널 개발 측면에만 집중해 있기를 유지했습니다.

LF (역자 주: 리눅스 재단 - Linux Foundation) 는 저와 Greg KH 같은 일부 핵심 개발자들을 지원하는 것 외에도 많은 일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 여러분이 LF 웹사이트 (또는 위키피디아 페이지) 에서 찾아보는게 정말 나을 정도로 LF 는 많은 일을 하고 있습니다. LF 는 다양한 종류의 인프라 관련 일을 하고 있습니다: 어떤건 기술적입니다만 (kernel.org 같은), 다른 “지원” 쪽 일도 많습니다 - 컨퍼런스를 조직하고, 업계 파트너들을 위한 실무 그룹을 만들고, 등등.

그러니까, LF 는 기본적으로 인프라와 리눅스를 둘러싼 다양한 것을 위한 많은 프로젝트들을 지원합니다. 그리고 저는 그저 기본적으로 제가 하는 모든 일은 오픈소스가 되어야 한다는, 그리고 LF 는 제게 리눅스를 가지고 뭘 해야 한다고 할 수 없는, 상당히 특수한 고용 계약을 가진 직원일 뿐입니다. 전 행복하고, 재단의 멤버인 회사들도 행복한 듯 보이는데, 그들 모두가 전 어떤 회사 정책에도 정말로 속박되지 않음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Other Interests

JA: 무엇이 당신을 미국으로 이끌었나요? 핀란드를 그리워하거나 그리로 돌아가는 걸, 또는 다른 나라로 이주하는 걸 고려해 봤나요?

LT: 전 97년에 미국으로 이사왔는데 부분적으로는 제가 상당히 젊었고 제가 무척 익숙한 영역에서 (예를 들어 평범하지 않은 80386 아키텍쳐 - 그걸 뜯어보는게 리눅스가 시작된 목적이었죠) 매우 흥미로운 일을 하는 스타트업으로부터 고용 제안을 받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당시 핀란드는 상당한 기술 강국이었지만 휴대전화 위주였습니다 (노키아는 핀란드 기업이고 당시에는 세계에서 가장 큰 휴대전화 회사였고 매우 큰 점유율을 가진 핀란드 최대 기업이었습니다).

전 전화기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이건 그게 성장해서 작은 컴퓨터가 되기 전의 일입니다 - 여러분이 믿을지 모르겠지만 사람들은 실제로 그걸 다른 사람들과 대화하기 위해 사용했습니다). 그리고 미국은 흥미로워 보였고, 저는 제 부인과 우리의 (당시에) 태어난 지 10주 된 첫째 딸을 데리고 여기로 이사 왔습니다.

첫 아이가 생겼을 때, 그리고 도와줄 다른 가족이 없는데 다른 나라로 이사하는 것은 가장 현명한 일은 아마 아닐 겁니다. 하지만 봐요, 우린 젋었고, “시도해보자” 전략을 취했으며, 그게 모두 잘 통했습니다. 우리가 2월에 어떻게 이사했는지, 그리고 우리가 떠나던 때의 헬싱키는 추웠던 것 (섭씨 -20도, 그러니까 화씨로 대략 0도였습니다), 샌프란시스코 공항에 도착해 비행기에서 내렸을 때에는 맑고 향기로운 화씨 70도였던 걸 (역자 주: 섭씨로 대략 20도) 아직도 기억합니다.

흥미로운 일입니다. 미국은 지금은 제 집이 있는 나라입니다, 그리고, 그래요, 전 핀란드의 어떤 부분들은 그리워 합니다. 미국의 교육 시스템은 재앙입니다. 좋은 학교를 위해선 올바른 지역으로 이사를 해야만 하고, 좋은 대학을 위해선 말도 안되게 비싼 학비를 지불해야 합니다. 이건 부끄러운 일입니다. 건강 보험 시스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미국의 정치적 분위기는 “약간 이상함” 에서 완전히 공포스러움으로 변했습니다. 핀란드에서는요? 대부분 잘 작동합니다.

하지만 보세요, 장점들도 있는데, 그건 날씨만이 아닙니다 (그래요, 우린 그 후에 오레곤 포틀랜드로 이사했고 여기 날씨는 Bay Area 만큼 좋지는 않죠, 하지만 절 믿으세요 - 핀란드보다는 여기 날씨가 여전히 훨씬 나아요). 그리고 우린 우리 아이들이 핀란드 말을 못할 정도로 여기서 오래 살았고 (저와 제 부인 둘 다 스웨덴 말을 사용하는 핀란드의 소수 집단 출신이라, 집에서는 스웨덴 말을 씁니다), 미국에 친구들이 있고 사회적으로 묶여 있습니다. 그리고 좋은 직업을 가지고 있다면 미국 사회의 문제들을 대다수 무시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핀란드로 돌아가는 걸 고려해 봤느냐구요? 몇번요. 처음은 아이들이 학교를 다니기 시작했을 때입니다. 고등학교를 다니기 시작했을 때도 그랬구요. 대학교에 갈때도 그랬습니다. 어떤 패턴이 보이나요? 그리고 트럼프가 재당선 될 수도 있을 것 같아 보였을 때 또 고려했습니다.

JA: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그 선거에 주의를 기울였고, 그게 어떤 의미가 될지 걱정했죠. 그리고 지금조차도, 칠천만의 미국인이 그의 재당선을 지지했음을 생각할 때, 미래에 대한 어떤 전조가 보입니다. 트럼프의 재당선을 지지하는 사람들과의 대화는 어떻게 하시나요?

LT: 일반적으로 미국의 정치 시스템은 절 근심하게 만들고, 미국의 예외주의와 민족주의는 슬프고 공포스럽습니다. 특히 그게 자신들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말그대로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다른 나라에 살아본 적도 없는 사람들에 의해 행해질 때에요.

미국은 여러 측면에서 멋진 나라이고 많은 문화와 사람들로 (그리고 자연으로) 가득한, 다양성이 풍부한 나라이며 전 그걸 좋아합니다. 사실 이게 제가 핀란드로 돌아가기를 가장 힘들게 하는 부분일 겁니다 - 핀란드는 매우 친절하고, 이성적이고 안전한 나라지만 매우 작고 매우 단일한 곳입니다.

하지만 교육받지 않은, 그 “랄라, 아메리카 넘버원!” 류의 것들은 매우 짜증나기도 합니다. 여러분은 아메리카 깃발로 가득한 트럭들을 볼 것이고, 종종 부끄러움에 얼굴을 감싸게 될겁니다.

그리고 가끔은 교육받은 사람들조차 그럽니다. 트럼프가 당선되기 전, 저는 무척 친절한 의사와 이야기한 적 있는데, 그는 미국 건강 보험 체계가 세계 최고라고 절대적으로 믿고 있었습니다. 그는 다른 나라에서 살아본 적 없으면서 그렇게 생각했고, 때문에 다른 나라가 실제로 더 나은 건강 보험 체계를 가지고 있을 거라 인정할 수 없었을 겁니다 - 그 더 나은 건강보험 체계를 실제로 목격한 누군가와 토론하면서도 말이죠. 그는 의대에서 수년의 세월을 보낸, 상당히 교육된 사람인데도 그 “아메리카, x나 좋군!” 정신상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맞아요, 그는 트럼프 지지자였습니다.

제 말을 오해하지 마세요 - 민족주의는 유럽을 포함해 어디에나 존재합니다. 핀란드조차도 예외가 아닙니다. 하지만 그것의 미국 버전은 무척 독소로 가득해 보입니다.

그리고 솔직히, 그게 제가 서부 해안에 사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 오레곤은 대부분 무척 진보적인데 적어도 모든 인구 밀집 지역에서는 그렇습니다 (동부 오레곤은 무척 다릅니다만, 거기에 정말로 살기는 거의 누구에게나 어려울 겁니다 - 영역은 넓은데 매우 적은 인구만이 거기 삽니다). 그러니 제가 사는 곳에서는 남부연합 깃발 (또는 트럼프 깃발) 을 잘 보기 어렵습니다, 어디선가 큰 트럭을 탄 사람이 때때로 나타나긴 하지만 말이죠.

하지만, 전 미국이 정말 변화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린 이제 여기서 거의 25년간 살아왔고, 그 동안에만도 변화가 있었다고 느낍니다. 광적인 신앙심은 사라지고 있습니다, 이것도 어디 사는가에 무척 연관된 문제지만 말이죠. 그리고 여러 측면에서 미국은 분명 사회 억압적 정책을 해결하려 노력했습니다 (예를 들어 동성애자 결혼 합법화, 마약류와의 전쟁의 실질적인 종료 등등). 그러므로 전체적으로 저는 꽤 낙관적이고 트럼프 현상은 필경 (바라건대) 그 전체적인 긍정적 변화의 결과일 뿐이라 생각합니다. 고전적인 반동적 보수화죠.

JA: 리눅스 커널 외에 어떤 흥미와 취미를 가지고 있나요? 커널 개발에 집중하고 있지 않을 때에는 뭘 합니까?

LT: 이미 몇번 그 주요한 두가지를 이야기 했습니다: 전 독서를 많이 하고 (진지한 것 말고 판타지나 공상과학류를 아무거나 골라서 제 킨들에서 읽는 경향이 있습니다), 여행을 할때는 가능하면 스쿠버 다이빙을 하려 노력합니다.

그리고 전 정말 평범한 가족적 삶을 유지합니다. 전 세 딸이 있지만 모두 충분히 자랐고 거의 독립했습니다. 막내는 여전히 대학교를 다니고 있고 여름에는 집에 올겁니다. 둘째는 대학원을 다니고 있고 여름에도 집에 오진 않을 겁니다. 첫째는 이 나라의 반대편 (역자 주: 미국 동부가 되겠네요) 에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우린 여전히 가족 휴가를 가지려 노력합니다만 (하지만 둘째만 스쿠버 다이빙 자격증을 땄어요 - 모두 그러도록 노력했지만, 현재로썬 그렇습니다), 작년은 정말 좋지 못했죠.

그러니 요즘은, 주로 저와 제 부인과 우리의 두 반려견들, 그리고 반려묘 한마리와 살고 있습니다. 전 제 첫번째 백신 접종을 받았고 몇달 내로 약간은 더 평범한 삶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JA: 항상 새로운 책을 찾는 한명의 열렬한 공상과학 소설 독자로써, 저는 당신이 다른 것들보다 더 즐기는 작가나 시리즈가 있는지 궁금하군요. 당신이 여전히 때때로 생각하는, 언급할만한 좋은 책들이 있을까요?

LT: 솔직히, 저는 “읽고는 잊어버리는” 종류의 사람입니다 - 전 대부분 금방 기억에서 잊혀질, 나중에도 생각하게 되지는 않을게 분명한 것들을 무작위로 읽습니다. Lios McMaster Bujold 의 Miles Vorkosigan 시리즈 같은 것들은 제 기준으로 교양서 수준의 것입니다 - 전 작가에 관계 없이 공짜 또는 99센트짜리 킨들 공상과학과 판타지 소설들을 읽었던 것 같습니다. 대부분 판타지 소설이었는데, 찾기 쉬운 게 주요한 이유였습니다 (그리고 저는 나쁜 판타지 소설보다 나쁜 공상과학소설에 더 짜증납니다).

“쓰레기는 아닌” 부류의 판타지 소설 쪽에는 Brandon Sanderson 과, 어쩌면 Robin Hobb 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Sanderson 의 작품에는 대략 50개는 되는, 금방 기억에서 잊혀질 법한 아무런 검과 마법 이야기가 있죠.

제가 다시 손에 집어드는 것들도 몇개 있는데, 저는 Dune saga 를 10년에 한번씩은 다시 읽는 것 같습니다. 그건 시간이 지나도 여전하고 세월을 잘 버텨낸 (매우 희귀한) 것 중 하나입니다. 10대였을 때에는 Heinlein 을 좋아했습니다만 지금은 싫증났습니다.

그러니, 제게서 읽을 것에 대한 단서를 구하지 마세요. 제게 있어, 독서는 휴식을 위한 것이지 지식을 위한 것이나 매우 진지한 것이 아닙니다.

JA: 예전에 하신, 당신의 다이빙에 대한 배경을 설명한 이 인터뷰 가 흥미로웠습니다. 여전히 당신이 시작한 다이빙 기록 프로그램인 Subsurface 를 사용하고 거기에 기여하시나요?

LT: 여전히 사용합니다, 작년엔 분명한 이유로 그걸 사용하지 못했지만요. Subsurface 는 제가 만들고 싶어서가 아니라 필요로 인해 만들었다는 점에서 Git 과 약간 비슷합니다. 그리고 Git 처럼, 전 그걸 위한 메인테이너를 구했고, 지금은 Dirk Hohndel 이 오랫동안 그걸 유지보수해 왔으며 저만을 위한 것보다 훨씬 더한 무언가로 만들었습니다 (처음에는 리눅스만 지원했는데 윈도우즈, MacOS, iOS 그리고 안드로이드도 지원하게 만들었죠).

그리고 다이빙 없이는 그걸 위한 작업을 할 동기가 없습니다, 보고된 문제 일부를 고치는 걸 작년에 돕긴 했지만요.

제 두번째 백신 접종은 2주 뒤이고, 몇달 내로 다이빙을 다시 할겁니다. 그러니 그게 제가 문제들 몇개를 더 고치게 만들겠군요.

JA: 감사합니다. 제 커리어 전체는 당신의 “취미” 에서 성장했습니다, 직접적으로는 리눅스의 사용을 통해, 그리고 간접적으로는 리눅스와 Git 으로 인해 존재하게 된 셀 수 없이 많은 다른 프로젝트를 통해서 말이죠. 이 인터뷰를 통해 당신은 여전히 당신이 하는 일을 사랑하고 있음을 알게 되어 다행입니다. 당신이 완전한 백신 접종을 곧 마칠 거라니 기쁩니다. 그리고 이 모든 질문들에 상세하고 통찰력 있는 답변들을 위해 당신의 많은 시간을 공유해 준 데 대해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다시 말하지만, 감사합니다!


첫번째 파트의 번역은 여기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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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ongJae Park (SJ)
Kernel Programmer

SeongJae Park (SJ) is a programmer who loves to analyze and develop systems.